[이재명의 웹자서전] ep.5 삼계초 5학년은 싹 다 수학여행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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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1-11-07 17:1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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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험한 선생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5학년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은 내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모두 가는 수학여행인데 재명이가 빠지면 되겠습니까? 아니, 우리 교장선생님께서 그렇게 방침을 세우셨다니까요. 삼계초등학교 5학년은 싹 다 수학여행을 간다, 이렇게요!”

산골짜기 화전민 소개집까지 쫓아온 선생님은 그렇게 열변을 토하셨다. 수학여행비는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남의 신세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어머니는 슬프고 복잡한 표정으로 수학여행 참가동의서에 동그라미를 쳤다.

돌아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은 못내 존경스럽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선생님을 바래다주며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화전민 소개집을 선생님께 보인 것이 부끄러웠다. 소개집은 강제로 이주당한 화전민들을 위해 시멘트블록으로 지은 방 두 칸짜리 허술한 집이었다.

교장선생님이 모든 학생은 수학여행을 간다는 방침만 세운 건 아니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 사정을 살펴 스스로 수학여행비를 벌게 해주셨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아이 둘을 하천가 개간한 돌밭에서 돌을 고르거나 고사리손으로 보리 베는 일을 따내 품삯을 받아 저축하게 해주셨다. 품삯도 어른들 임금의 절반에 가까운 큰돈이었다.

학교 매점을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게 하고 가난한 아이들몫의 수익금을 수학여행비로 저축했다.

지금 생각하면 시대를 앞서가신 선생님들이시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건드리지 않고, 스스로 성취하게 해주셨던 셈이다. 깊은 배려와 세심한 사랑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5학년은 가난 때문에 빠지는 학생 없이 모두가 생전 처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거기서 여름에도 얼음이 있다는 걸 1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처음 알았다. 생선뼈째 갈아만든 진짜 어묵의 맛도...

내 유년의 환상 같은 한 장면도 교장선생님이 만들어주셨다.

머리를 묶은 여성교장님이 한번은 한겨울에 전교생 모두를 학교앞 논바닥으로 나오라 하셨다. 멀리서 군용 헬리콥터 한 대가 날아왔는데, 놀랍게도 그 거대하고 신비한 비행물체가 우리 눈앞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우리의 돌팔매질 대상이던 그 육중한 쇳덩어리를 가까이 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이었는데, 교장선생님이 조종사와 얘길 나누더니 손을 흔들어 아이들을 불렀다.

“만져봐라! 이걸 타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단다.”

교장선생님의 그 말은 마법처럼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제일 먼저 다가가 헬리콥터의 차가운 동체를 만져보았다. 가슴이 저릿하고 온 몸이 붕 떠올랐다.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져버린 헬리콥터는 미지의 광대한 세계에 대한 꿈을 만들어 주었다.

가난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것. 그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기준.

아마도 내가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는 그 최초의 경험에서 싹을 틔웠을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이 매점을 운영하고 그 수익을 수학여행비로 나누어 가진 일은 협동조합과 보편기본소득에 대한 최초의 경험이었다.

삶은 가끔씩 예상을 벗어나 경이로울 때가 있다. 내 안에 사랑 넘치는 그 선생님들이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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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인간 이재명> (아시아, 2021)